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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2014/독서

[독서 감상문] 박지원, 조선 후기 명필과의 만남

malu 2012. 11. 17.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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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조선 후기 명필과의 만남

 

왕유승

 

 

 

‘박지원’이라는 이름은 나에게 매우 익숙한 이름이다. 중학교 때부터 박지원은 국어책이면 국어책, 사회책, 한국사 등에 실려 있고, 분명 참고자료로도 나에게 많이 간접적으로 가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실상 박지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니 북학파라는 것을 제외하고 그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사실 이런 조선 후기 소설과 박지원의 작품에 대해서 이렇게 따로 조사하자고 마음먹지 않는 이상 시험공부나 학교 수업 외에 접할 기회가 없었고, 지금이 아니라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왕 한 번 하는 김에 박지원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자는 생각을 하고, 전반적인 박지원에 대한 성품을 알기 위해 ‘나의 아버지, 박지원’을 읽고, 열하일기, 방경각외전에 수록된 마장전, 양반전, 광문자전, 민옹전, 김신선전, 열녀 함양 박씨전, 허생전, 호질 등의 그의 작품들을 읽어보았다. ‘전’으로 끝나는 소설들은 잘 찾아볼 수 있었는데 박지원이 쓴 시에 대해서는 많이 찾을 수 없어 약간의 아쉬움이 남아있다.

열하일기는 말 그대로 일기라서 박지원의 작품들에 비해 나의 아버지 박지원과 같이 ‘박지원’ 이라는 인물 그 자체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뭔가 읽으면서 박지원은 인격적 결함이 없는 사람 같았다. 사실 사람이 모든 일에 짜증이 안 날 수 없건만 박지원은 누가 시비를 걸어와도 조곤조곤히 말하고, 자신의 종이 잘못을 해도 다그치는 등의 위대한 성품이 보였다.

마장전은 방경각외전에 수록된 구전 가운데 첫 작품이다.

여태까지 수업시간에 배웟던 소설들의 대부분과 양반전을 제외한 연암의 대부분의 소설들이 긍정적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국민들의 신분 상승 욕구를 해결시켜 준다던지, 국민들을 계몽하는 것을 목적으로 비현실적 요소를 첨가하는 등의 방법으로 흥미를 유발해 주는 것이었는데 이 마장전은 송욱, 장덕홍, 조탑타라는 세 걸인(거지)이 서로 벗이 되어 세상을 떠돌아 다니면서 권세, 명예 , 이익만 추구하는 양반들의 신의 없는 사귐을 대화에서 보여주어 비판하고 풍자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1964년 겨울’ 이라는 작품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1964년 겨울에도 마장전의 세 걸인과 같이 ‘나’,‘사내’, ‘아저씨’가 나오고, 서로 ‘꿈틀거리는 것을 사랑하냐는 등, 옆에 지나가는 파리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등의 의미없는 대화들만 나누는 것을 보여주어 산업화로 인해 신의 없는 사귐을 비판한 작품으로 서로 주제가 비슷하여 어려운 고전산문의 작품을 비교적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

양반전 :

양반전은 경제적 무능력하고, 경제적 무능력인대도 허세 가득한 생활 태도로 살아가는 비생산적 계층이 되어버린(아니 어쩌면 원래 비생산적 계층인가?) 양반들을 나타낸다. 게다가 돈 많고 배우지 못한 부자들은 매관매직을 일삼고... 조선 후기, 양반 이라는 작자가 양반답지 못하다. 고로 ‘양반’이라 하면 공자나 노자 같이, 아니면 정약용같이 유명한 사람들의 이야기들만 자세하게 읽어보고 양반의 매관매직, 재산수탈, 탐관 오리 등의 단어들은 ‘단어 그 자체’만으로만 만나봐서 그 실제를 보고 나니 충격을 받았다. 돈으로 양반 되려는 사람이나, 신분 파는 양반이나 그 중간에서 양반 매매를 원만히 처리하는 척하면서 부자의 양반 취득을 방해하고 협박하는 군수나 조선 후기라 그런지 사람들이 다 한심해 보였다.

이런 양반전, 마장전에 반해 광문자전은 반대의 성격을 지녔다. 광문자전은 제목 그대로 ‘광문’ 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사람에 대해 쓴 글인데 이 광문 이라는 사람이 거지에 못생기기 까지 하지만 착하고 신의가 있으며, 분수를 지키며 자유롭게 살아 욕심이 없고,그 때문에 친구도 많다. 양반전을 읽으며 속이 터저라 답답했는데 광문자전으로 넘어오는 순간 내 입가에 훈훈한 미소가 띄었다. 특히 가장 인상깊었던 건 이 광문이라는 사람이 조선 후기에 걸맞지 않는 남녀 평등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남녀 평등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표출하기가 되게 꺼려졌을 텐데 그 용기 또한 대단한 것 같다.

연녀 함양 박씨전에 대해선 박씨전도 아니고 열녀 함양 박씨전은 또 뭐지? 하는 생각으로 읽었다. 음.. 확실히 우리가 알고 있는 스펙터클하고, 세고, 착하고, 예쁘고 모든 것을 갖춘 그 박씨와 이 함양 박씨는 달랐다. 이야기는 함양 박씨와 어머니가 과부로서 지조와 절개를 지킨다는 내용으로 조선시대의 형식적인 도덕의 그릇됨을 폭로하고 이런 절개들을 비웃고 있다. 의외로 인간의 본성을 억누르는 사회의 제도의 불합리성을 비판하고 있는데 현 시대에도 이런 생각은 유교 때문에 남아있는데 반해 조선시대에 박지원이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을 보면 역시 시대를 앞서 나가는 선구자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허생전은 예전에 만화책으로 한 번 읽어 본 기억이 난다. 사실 박지원의 소설들을 거의 만화로 읽어보았다.(근데 책 읽을 때 저자를 중요시 하지 않아 작가와 제목을 연관시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잘 몰랐던 것 같다.) 이 허생전도 읽어 봤는데 그때 보다 원문에 가까운 번역본으로 읽어보니 좀 더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어 좋았다. 허생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변씨가 허생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돈을 빌려준다는 것이다. 사람의 겉 모습을 보지 않고, 비언어적 표현을 보고, 그 사람의 성품을 보아 사람을 알아 볼 수 있는 그 통찰력이 매우 부럽고 그 부분을 읽을 대 감탄스러웠다. 또 인상 깊었던 건 이런 거지도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하는 꿈을 가지고, 실패했지만 절반 이상은 성공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홍길동전의 율도국과 비슷한 면을 지니고 있어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었고, 이런 정신을 본받고 싶다. 그리고 허생전에서도 예절을 가르치는 등의 소박한 실용성을 통해 박지원의 실학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이번 기회에 많은 조선 후기의 문학작품(박지원의 소설들에 대해 조사하면서 박지원의 작품이 아닌 다른 흥미로운 작품도 몇 읽어보았다.) 들을 읽어보면서 문학적 감상력과 논리적 사고력을 증진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